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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 선임

by 더 스포츠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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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레전드인 박지성 전북현대모터스 어드바이저가 전북현대와 계약을 연장하며 테크니컬 디렉터직을 맡게 됐다. 전북 구단은 1일 인터뷰에서 "향후 박지성은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선수단 구성 총괄을 맡아 선수 평가와 선수 구성을 직접 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성은 지난해 전북 어드바이저를 맡은 뒤 성인팀부터 유소년팀까지 아우르며 구단 운영 철학 수립 및 중장기적 플랜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 올해 창단한 b팀 운영 및 육성, 그리고 a팀의 전력 강화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는 향후 선수단 구성뿐만 아니라 선수단과 사무국 간의 가교 구실, 유스팀 시스템 방향 설정 등 더 폭넓은 업무를 맡게 된다. 박지성 디렉터는 "전북에 머물 수 있게 돼 기쁘다"라며 "K리그와 전북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만큼 전북이 더 좋은 클럽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박지성은 어드바이저 시절처럼 비상근직으로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박지성
출처 마이데일리

 

박지성은 초등학교 때 차범근 축구상 장려상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유망주였으나 고등학교 시절 왜소한 체격과 평발로 인해 박대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당시 감독이었던 이학종 감독은 체격을 보완시키기 위한 훈련만 시켰고, 이는 박지성이 기본기를 철저히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원공고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으나 당시 수원공고가 고교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박지성 역시 선수로써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박지성을 받아주는 K리그 팀과 대학 팀이 없었다. 그러다 이학종 감독의 도움으로 명지대에 입학하게 되었으며 울산에서 전지훈련 당시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던 도중 뛰어난 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 활약으로 허정무 감독의 눈에 띄어 바로 올림픽 대표로 선발이 되어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게 된다. 그 이후 J리그의 시미즈 S펄스와 교토 퍼플 상가의 영입제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시미즈가 대학생 조건부 계약을 제시하면서 정식선수 계약을 제시한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을 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이후 교토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며 팀의 1부리그 진입과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게 된다. 2002 시즌 종료 후 2003년 당시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을 하게 된다.

 

네덜란드 리그 진출 초기엔 잘 적응하지 못 하며 저조한 성적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경기장에서 공을 잡으면 원정팬들이 아닌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히딩크 감독이 박지성을 원정경기에만 출전을 시키게 된다. 그도 이 시기를 매우 고통스러웠던 시기로 회상하고 있으며, 이후 본인의 실력이 일치월장하자 많던 야유가 환호성으로 바뀌었는데, 이때의 경험을 박지성은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2003/04 시즌 중반부터 발군의 활약을 보인 박지성은 2004/05 시즌 주전을 차지하며 팀의 선두 독주에 공헌함과 동시에 챔피언스리그에서 당시 철의 포백(말디니-네스타-스탐-카푸, 일명 말네스카 라인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최고의 수비 조합 중 하나이다)을 구성했던 ac밀란을 상대로 골까지 기록하며 전 유럽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 시즌 44경기에 나와 11골 7도움을 기록하며 공격수 박지성의 최고의 전성기를 구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8강에서 리옹을 만났는데,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에시앙을 보러 왔다가 박지성을 보고 이적을 진행시켜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그가 탄생하게 된다.

 

이때 당시 이적 과정에서 문제가 한 번 발생하는데, 워크퍼밋이 나오려면 2년 이상 75% 이상의 국가대표 경기를 소화해야 했으나 64%밖에 되지 않아 유명 축구인 3명에게 추천서를 받아야만 하던 상황이었다. 원 소속팀 감독인 거스 히딩크와 이적하는 팀의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써 2명이 되었으나 1명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박지성과는 아예 접점이 없는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요한 크루이프가 써줬다고 한다. 그 이유는 04/05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보고 감명받았다고 해서 써줬다고 한다. 그래서 박지성은 워크퍼밋 발급에 성공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입단을 하게 된다.

 

당시 아시아 마케팅 차원에서 라이언 긱스의 백업으로 영입했다는 말이 많았지만 거의 풀타임으로 출전하며 케즈만이나 다른 네덜란드 리그 출신 선수들에 비해 무난하게 적응을 하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박지성이 매우 공격적인 웡어였고, 특유의 스피드와 체력을 바탕으로 한 활동량으로 반니스텔루이, 웨인 루니와 찰떡 궁합을 과시하며 데뷔 시즌을 무난히 보내게 된다. 이 시즌 45경기 2골 8도움을 기록하면서 선발과 교체를 오갔음에도 무난한 활약을 보였다. 두 번째 시즌엔 두 번의 장기 부상에 신음하며 어려운 시즌을 보냈으나 20경기 5골 2도움으로 공격 생산 능력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첫 부상 복귀 이후 최고의 폼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해 좋은 폼을 시즌 끝까지 유지하지 못 했던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장기부상의 여파로 세번째 시즌 초중반엔 재활에만 전념하다 19라운드인 선덜랜드 전에서 복귀전을 치르게 된다. 초반 몇 경기는 장기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볼터치가 약간 세밀하지 못 했던 점은 있으나 적응을 거치며 점차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후 중요한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였는데,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1, 2차전을 모두 선발출장하여 맨유의 9년만의 결승 진출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다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선 명단 제외당하면서 아쉽게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후일 퍼거슨은 인터뷰에서 이 결정을 매우 후회했다고 했다.

 

네 번째 시즌엔 폼이 오락가락하긴 했으나 중요한 경기에서 다시 한 번 빛나게 된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마다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체력적인 여파 때문인지 풀타임을 뛰는 경기의 수가 다소 줄어든 모양새였다. 하지만 맨유와 4년 재계약을 맺으며 퍼거슨 감독에게 여전히 신임을 받고 있다고 느껴졌으며, 아스날과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골까지 기록하며 맨유의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했으나 당시 최고의 폼을 보여주던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축구를 전혀 막지 못하며 0:2로 패해 아쉽게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된다. 

 

다섯번째 시즌에도 시즌 초반 선발 출전과 명단 제외를 오가며 팀내 입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있지만, 부상 복귀 이후 다시금 주전 자리를 되찾게 된다. 이 시즌엔 호날두가 떠나고 새로이 영입된 발렌시아가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기존의 루이스 나니가 에이스로 활약하는 가운데 긱스마저 회춘한 모습을 보이면서 주전 경쟁에 다소 어려움을 겪던 시즌이었다. 그러나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고, 챔피언스리그 16강 1, 2차전을 모두 선발 출전해 특히 2차전에선 당시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안드레아 피를로를 경기장에서 지워버렸고 이 경기에서 골까지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치게 된다. 이후 리버풀 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면서 좋은 모습을 계속해서 이어나갔으나 첼시에게 밀리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여섯 번째 시즌에도 시즌 초반 선발 출장과 명단 제외를 오가며 위기감이 고조되나 싶었지만 11라운드 울버햄튼 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극적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11월 전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맨유 11월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아스날과의 17라운드 골을 기록하며 여전한 아스날 킬러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12월에도 이 좋은 기량으로 맨유 12월의 선수로 선정이 되기도 한다. 이후 아시안컵 차출과 복귀 이후 부상으로 결장 기간이 많았으나 챔피언리그 8강전 첼시와의 경기에서 그는 또다시 빛나게 된다. 1차전 10년 만의 원정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2차전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골을 기록하며 첼시의 추격 의혹을 끝내버리게 된다. 1달 후인 첼시와의 경기에서 시작하자마자 치차리토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승리에 일조했는데, 당시 경기 내내 마이클 에시엔과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를 고생시키는 등 공수 양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도 선발 출전하였으나 이때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3으로 패하며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맨유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 시즌 3라운드 아스날 전에서 교체 투입된지 2분 만에 골을 기록하며 아스날 킬러의 명성을 유감없이 보여줬으며 해당 경기는 8:2라는 역사적인 스코어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즌 첼시와의 23라운드에서 교체 출전하며 맨유에서 통산 200경기 출장이라는 금자탑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유로파리그 아약스 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며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즌을 보내게 된다. 이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은 이적을 결심하게 되는데, 유로파리그 탈락 이후 7경기 연속 결장을 하던 시점에서 이적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길었던 맨유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선 시즌 초반부터 주전 완장을 차고 나오며 새로 영입된 선수들과 함께 새 시즌 기대를 모았으나 초반부터 안 좋은 경기력으로 인해 5라운드까지 무승에 그치는 등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게 되고, 마크 휴즈 감독이 결국 성적 부진으로 경질이 되면서 새로이 레드냅 감독이 부임하게 된다. 그러면서 기존 선수들을 활용하는 레드냅에 의해 팀에서의 입지가 크게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시즌 중반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주장 박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교체와 선발을 오갔으나 끝내 팀은 강등이 되고 만다. 강등 이후 이적설에 휘말렸으며 2013년 7월 30일 친정팀인 psv 아인트호벤과 임대 계약을 하면서 아인트호벤으로 복귀하게 된다. 

 

이적 이후 부상으로 복귀 경기가 늦어지다가 ac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복귀 전을 가지게된다. 복귀 당시 오른쪽 윙어로 68분간 뛰며 1:1 무승부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2차전에선 0:3 패배의 영향을 미친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언론들로부터 최악의 평가를 듣게 된다. 이후엔 출전을 계속 이어오다 부상 이후 결장했고 다시 복귀하면서 팀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크게 일조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즌 종료 후 24년간 하던 축구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은퇴 이후 맨유의 앰버서더로 임명이 되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sbs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2021년 전북 현대의 어드바이저 역할을 맡았으며, 재계약 이후엔 테크니컬 디렉터로 활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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